“DM으로 주문 완료! 계좌이체 부탁드려요.”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우연히 발견한 멋진 옷, 마음에 쏙 드는 수제 액세서리. 설레는 마음으로 판매자에게 연락하면 어김없이 계좌번호가 돌아옵니다. 이때 슬쩍 건네는 한 마디, “현금으로 하시면 10% 할인해 드릴게요.”
달콤한 제안에 잠시 흔들리지만, 우리는 똑똑한 소비자입니다. “혹시 현금영수증도 가능한가요?”라고 물어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 저희는 아직 간이과세자라서…”, “이미 할인을 해드려서 발급은 어려워요.” 이런 애매한 답변, 과연 그냥 넘어가도 괜찮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소비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현금영수증, ‘선택’이 아닌 ‘의무’
우선 현금영수증이 무엇인지 그 본질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위한 ‘혜택’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현금영수증 제도의 핵심은 판매자의 소득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공정한 과세의 기준을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즉, 소비자의 권리인 동시에 판매자의 ‘의무’인 셈입니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대부분의 업종, 특히 전자상거래 소매업은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에 해당합니다. 이는 사업자 규모(일반과세자, 간이과세자)나 상표 등록 여부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소비자가 10만 원 이상의 상품을 현금으로 구매하고 현금영수증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판매자는 소비자의 휴대전화 번호 등을 파악해 자진해서 발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많은 SNS 마켓 판매자들이 ‘간이과세자라 발급이 어렵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간이과세자 역시 사업자등록을 하고 국세청 홈택스에 가입하면 얼마든지 현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습니다. ‘어렵다’는 말은 ‘번거롭고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는 말의 정중한 포장일 뿐입니다. 이는 마치 식당에서 카드를 내밀자 “저희는 카드 단말기가 없어요”라고 말하며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현금가 할인’ 뒤에 숨겨진 불이익
판매자가 제안하는 10% 할인은 당장 내 지갑에서 나가는 돈을 줄여주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더 큰 손실을 안겨주는 ‘세금 폭탄’의 뇌관이 숨어있습니다. 이 거래가 국세청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순간, 양쪽 모두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판매자가 감수해야 할 위험
먼저 판매자는 막대한 가산세 폭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현금영수증 발급 요청을 거부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발급할 경우, 해당 거래 금액의 5%가 가산세로 부과됩니다. 만약 소비자가 신고까지 한다면, 발급 거부 금액의 20%에 해당하는 과태료가 추가로 부과될 수 있습니다. 10만 원 이상 거래에 대해 자진 발급 의무를 어겼다면, 미발급 금액의 20%가 과태료로 나옵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10% 할인의 이익은 가볍게 뛰어넘는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습관적인 탈세’가 불러올 미래입니다. 이런 거래가 쌓이면 명백한 매출 누락이 되고, 이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최근 국세청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SNS상의 거래와 의심스러운 계좌 입출금 내역을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한번 세무조사의 대상이 되면 수년간의 탈루 세금은 물론, 무거운 가산세까지 한꺼번에 추징당하며辛苦게 쌓아 올린 사업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잃어버리는 권리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떨까요? 당장의 10% 할인을 얻는 대신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말정산 소득공제 혜택입니다. 현금영수증은 신용카드(15%)보다 두 배 높은 30%의 공제율을 자랑합니다. 만약 당신의 연봉이 5,000만 원(과세표준 1,400~5,000만 원 구간, 세율 15%)이고, SNS 마켓에서 100만 원어치 물건을 샀다고 가정해 봅시다.
현금영수증을 받았다면 100만 원의 30%인 30만 원이 소득공제 대상이 되고, 여기에 세율 15%를 곱한 4만 5천 원(지방소득세 포함 시 4만 9,500원)을 연말정산 시 돌려받게 됩니다. 하지만 ‘10% 할인’의 유혹에 넘어가 현금영수증을 포기했다면, 이 혜택은 공중으로 사라집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로서의 기본 권리 보호입니다. 현금영수증과 같은 공식적인 거래 증빙이 없다면,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배송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환, 환불, 수리를 요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판매자가 연락을 피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할 경우, 법적인 구제 절차를 밟는 것 또한 험난해집니다.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발급 거부, 이렇게 신고하세요
판매자가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했다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분노하거나 판매자와 언쟁을 벌일 필요도 없습니다. 국세청은 이런 불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매우 편리하고 강력한 신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고자에게는 쏠쏠한 포상금까지 지급됩니다.
신고 전 준비물
신고를 위해서는 거래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다음 자료들을 미리 캡처하거나 확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판매자 정보: 상호, 사업자등록번호, 대표자 이름, 연락처 등. SNS 마켓의 경우 계정 아이디(@ooo)와 계좌번호, 예금주 이름만 있어도 신고가 가능합니다.
- 거래 증빙: 주문 날짜와 금액, 구매한 상품 내역 등을 알 수 있는 대화 내용(DM, 카카오톡 등) 캡처 화면.
- 대금 지급 증빙: 판매자에게 돈을 이체한 내역이 담긴 은행 앱 화면 캡처.
- 발급 거부 증빙: 현금영수증 발급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내용이 담긴 대화 캡처 화면.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신고 방법 및 절차
신고는 거래일로부터 5년 이내에 해야 합니다.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으며, 모두 비대면으로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 PC (국세청 홈택스): 홈택스 홈페이지 접속 → 상담/제보 → 현금영수증 민원신고 → ‘현금영수증 미발급/발급거부 신고’ 메뉴 선택 후 양식에 따라 작성 및 증빙자료 첨부.
- 모바일 (손택스 앱): 국세청 모바일 앱 손택스 설치 → 상담/제보 → 현금영수증 미발급/발급거부 신고.
- 전화: 국세상담센터(국번 없이 126번)를 통해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신고가 접수되면 관할 세무서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판매자에게 가산세와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그리고 신고자에게는 신고한 거래 금액의 20%를 포상금으로 지급합니다. (건당 50만 원, 연간 200만 원 한도) 예를 들어 30만 원짜리 코트 구매 시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당해 신고했다면, 6만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이는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 공정한 세금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것에 대한 국가의 보상입니다.
투명한 거래, 현명한 소비의 시작
신고는 이미 발생한 문제를 바로잡는 사후 조치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의 노력으로 건강한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소비자를 위한 예방 가이드
- 구매 전 사업자 정보 확인: 판매자의 프로필이나 공지사항에 사업자등록번호,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등이 명시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정보가 없다면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결제 전 현금영수증 발급 가능 여부 문의: “현금영수증 발급되나요?”라는 질문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하는 판매자와는 거래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 안전 결제 시스템 활용: 가급적이면 카드 결제나 네이버페이 같은 안전 결제(에스크로) 시스템을 갖춘 곳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자동으로 거래 기록이 남아 분쟁 발생 시 유리한 증거가 됩니다.
판매자를 위한 성장 전략
SNS 마켓을 이제 막 시작하는 판매자라면 ‘세금’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업자 등록과 현금영수증 발급 시스템 구축은 번거로운 절차가 아니라,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사업을 합법적이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끄는 첫걸음입니다. 투명한 회계 처리는 장기적으로 사업의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 정부의 각종 정책 자금 지원이나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본 자격이 됩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탈세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결국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행위입니다.
앞으로 국세청의 과세망은 더욱 촘촘하고 정교해질 것입니다. SNS, 개인 간 거래 플랫폼 등 새로운 형태의 상거래가 등장할수록, 이를 추적하는 기술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신고하고 성실하게 납세하는 것이야말로,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내 사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입니다.
현금영수증 한 장은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소비자의 소중한 권리이자, 판매자의 성실한 의무이며, 우리 사회를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약속의 증표입니다. 다음에 SNS 마켓에서 “현금으로 하시면 할인해 드릴게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이렇게 되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할인된 가격으로 현금영수증 부탁드려요.” 당신의 이 당연한 한마디가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현명한 선택의 시작입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중요한 결정 전에는 자격 있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게시물에는 광고·제휴 링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