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잊고 있던 추억에 잠시 미소 짓다 SNS에 공유 버튼을 누릅니다. 함께했던 친구들의 계정까지 살뜰히 태그하며 그날의 즐거움을 소환합니다. 잠시 후, ‘좋아요’ 알림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중에는 당신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싸늘한 메시지가 섞여 있습니다. “이 사진 당장 내리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 삼겠어.”
오랜 친구 사이에 사진 한 장 올린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소송까지 언급하는 친구가 야속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은 단순한 추억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법의 보호를 받는 엄연한 인격권이며, 당신의 클릭 한 번이 우정을 망가뜨리고 법적 분쟁까지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초상권, 내 얼굴의 ‘디지털 지문’
우리는 흔히 초상권을 연예인이나 유명인에게만 해당되는 권리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초상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인격권의 한 종류로, ‘내 얼굴이 함부로 촬영되거나 공개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하려면, 당신의 얼굴을 ‘디지털 부동산’이라고 생각해보면 됩니다. 당신은 그 부동산의 유일한 소유주, 즉 건물주입니다. 누군가 당신의 부동산을 사진 찍어 광고 전단에 사용하거나, 심지어 동네 게시판에 붙여놓는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건물주인 당신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온라인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얼굴이라는 부동산이 담긴 사진을 게시하는 행위는 반드시 소유주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임대 계약’과 같습니다.
과거에는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에 꽂아두는 것이 전부였기에 초상권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디지털 사진은 한번 온라인에 올라가면 무한 복제와 전파가 가능합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속도와 범위로 퍼져나가며, 심지어 악의적인 목적으로 편집되거나 사용될 위험까지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법원이 개인의 초상권을 그토록 엄격하게 보호하려는 이유입니다.
‘좋아요’가 부른 비극, 법적 책임의 무게
‘설마 친구끼리 소송까지 가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상대방이 초상권 침해로 문제를 제기하면,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법적, 관계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장난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직면할 수 있는 것은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입니다. 초상권 침해는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피해자는 당신을 상대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사진이 공개된 범위, 사진의 내용, 피해자가 입은 실질적인 피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배상액을 결정합니다. 단지 친구들과의 추억 공유였을지라도, 그 사진 때문에 상대방이 직장에서 곤란을 겪거나 사회적 평판에 타격을 입었다면 배상액은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단순히 얼굴이 노출된 것을 넘어, 그 사진이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시절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이 친구 왕년엔 이랬지’라며 재미로 올린 사진이, 현재 교사나 공무원으로 일하는 그 친구의 평판에 심각한 흠집을 낸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동의 없이 촬영된 신체 부위가 담긴 사진이라면 성폭력처벌법 위반이라는 훨씬 더 무거운 범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 현명하게 수습하는 법
문제가 이미 발생했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이성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단계별 해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즉시 삭제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첫걸음입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너도 그때 즐거워하지 않았냐”와 같은 변명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상대방의 요구를 즉각 수용하여 사진을 삭제하고,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비법률적 분쟁은 이 단계에서 감정이 풀리며 해결됩니다.
둘째, 만약 사과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상대방이 구체적인 피해를 주장한다면, 합의를 시도해야 합니다. 소송으로 가기 전에 양측이 만나 원만하게 금전적 보상이나 기타 피해 회복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입니다. 소송은 시간과 비용, 감정 소모가 극심한 과정입니다. 변호사 선임 비용과 소송 기간을 고려하면,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훨씬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셋째, 상황이 악화되어 소장(訴狀)을 받게 되었다면, 더 이상 혼자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즉시 변호사를 찾아 법률 자문을 구해야 합니다. 초상권, 명예훼손 관련 사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법적 절차에 맞춰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까지 오면 이미 친구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감정적인 호소보다는 법리에 기반한 냉정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관계의 디지털 에티켓’을 구축하라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애초에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친구의 비밀을 함부로 말하지 않듯, 디지털 세상에서도 친구의 얼굴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관계의 디지털 에티켓’을 세워야 합니다.
핵심 원칙은 ‘게시 전 확인, 공유 전 동의’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다른 사람의 얼굴이 식별 가능하게 나온 사진을 게시하기 전에는 반드시 당사자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 사진 올려도 괜찮을까?”라는 짧은 메시지 한 통이 미래에 발생할지 모를 모든 법적, 감정적 갈등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백신입니다. 단체 사진의 경우, 사진에 나온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2025년 현재, 법원은 디지털 인격권 침해에 대해 점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사진 한 장이 악의적으로 변형되거나 ‘딥페이크’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자신의 얼굴 정보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자기정보결정권)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몰랐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SNS에 공유하는 사진 한 장은 단순한 픽셀의 조합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역사와 인격,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소중한 추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즐거움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우정을 해치는 비극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스마트폰 갤러리를 열어보십시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한 사진을 올리기 전에, 잠시 멈춰 그의 얼굴과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는 성숙한 디지털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법적 책임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자, 변치 않는 우정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중요한 결정 전에는 자격 있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게시물에는 광고·제휴 링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