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동생이 재능기부라며 공짜로 만들어 준 로고, 정말 고맙게 잘 쓰고 있었죠. 사업이 조금씩 커지면서 잡지에도 실리고 방송도 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가 만든 로고로 회사가 이렇게 컸으니, 이제라도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고요.”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나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대표님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혹은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황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도움이 시간이 흘러 관계를 파괴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죠. 우리는 이런 상황을 그저 ‘서운하다’, ‘야속하다’는 감정의 문제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감정의 문제를 넘어,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법적 분쟁의 시작점입니다. 선물인 줄 알았던 그 로고가 사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폭탄의 뇌관은 바로 ‘권리’라는 이름의 법률 문제입니다. 오늘은 좋은 의도가 어떻게 최악의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지, 그리고 이 위험한 뇌관을 어떻게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지 명쾌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선의의 약속,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되다
우리가 흔히 ‘재능기부’라고 부르는 행위는 법적으로 매우 모호한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의의 표현일 수도, 혹은 대가를 나중에 받기로 한 암묵적인 계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호함이 바로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법은 기록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친구 사이의 “내가 그냥 해줄게”라는 말은 법정에 가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법률적 관점에서 이 행위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가 없이 권리까지 모두 넘기는 ‘증여’, 둘째는 일단 결과물을 제공하고 대가 지불은 나중으로 미루는 ‘구두 계약’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 어떤 문서도 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쓰냐”는 한국 특유의 정서가 더해져, 가장 중요한 권리 문제를 구두 약속이라는 안갯속에 남겨두는 것이죠. 이는 마치 설계도 없이 감으로만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그럴싸해 보여도,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짜’ 로고가 터뜨리는 법적 시한폭탄
‘나중에 돈 좀 주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면 아주 큰 착각입니다. 로고와 같은 창작물에는 ‘저작권’이라는 강력한 법적 권리가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면, 회사는 생각지도 못한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됩니다.
가장 직접적인 위험은 저작권 침해 소송입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창작물을 만든 사람(저작자)이 원칙적으로 모든 권리를 가집니다. 아무런 계약 없이 로고를 받아서 사용했다면, 회사는 로고의 소유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사용 허락’을 받은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만약 디자이너가 마음을 바꿔 “더 이상 내 로고를 쓰지 말라”고 요구하면, 회사는 하루아침에 브랜드를 상징하는 얼굴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로고를 바꾸는 문제를 넘어, 간판부터 명함, 홈페이지, 제품 포장까지 모든 것을 교체해야 하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로 이어집니다.
더 무서운 것은 손해배상 청구입니다. 디자이너는 회사가 그동안 로고를 사용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자신의 기여분으로 주장하며 거액의 사용료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성공적일수록 배상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수년간 쌓아 올린 브랜드 가치가 한순간에 부채가 되어 돌아오는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투자 유치나 사업 확장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며 기업의 미래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입니다.
이미 터진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미 디자이너가 대가를 요구하며 문제가 발생했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제는 냉정하게 법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는 것입니다.
1단계: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합의
소송은 양쪽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비용만 남기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할 것은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기여를 인정하고, 현재 회사의 재정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며, 양측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상 수준을 논의해야 합니다. 이때, 일시금으로 지급할 것인지, 혹은 회사의 지분 일부를 제공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보상 방법을 정해야 합니다.
2단계: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서 작성
합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반드시 그 결과를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로 남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서’입니다. 이 계약서에는 합의된 보상 금액과 지급 방식을 명시하고, 가장 중요한 조항인 “로고에 대한 저작재산권 일체를 양도한다”는 문구를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또한,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표시할 권리 등 ‘저작인격권’을 앞으로 어떻게 행사할지에 대한 합의(예: 저작인격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도 명시하는 것이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길입니다.
3단계: 내용증명 발송 및 법적 조치 검토
만약 대화가 통하지 않고 상대방의 요구가 과도하다면,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입니다. 내용증명은 그 자체로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우리의 공식적인 입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향후 소송에서 중요한 증거 자료로 활용됩니다. 여기에는 로고를 받게 된 경위, ‘재능기부’였다는 점, 원만한 해결을 원한다는 의사 등을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기재해야 합니다. 이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조정 신청이나 소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친분’과 ‘계약’을 분리하는 시스템 구축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처음부터 튼튼한 외양간을 짓는 것입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을수록 ‘문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는 상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하여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존중이자 안전장치입니다.
가장 좋은 예방책은 어떤 종류의 용역이든, 설령 그것이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만약 친구나 지인이 정말 좋은 마음으로 ‘무상’으로 결과물을 제공하겠다고 한다면, ‘대가 없음’을 명시한 ‘증여 계약서’ 또는 ‘저작재산권 무상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면 됩니다. 계약서에 “본 결과물은 무상으로 제공되며, 이에 대한 저작재산권 일체를 양도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문구 한 줄만 들어가 있어도 미래에 발생할 거의 모든 법적 분쟁을 원천 차단할 수 있습니다.
2025년 현재, 크몽이나 숨고 같은 재능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프리랜서,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 일상화되면서 이러한 저작권 분쟁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원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더욱 철저하게 계약 기반의 업무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전자 계약 시스템을 도입하여 단 몇 분 만에 간단한 계약이라도 체결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훗날 수천만 원의 소송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가장 현명한 투자가 될 것입니다.
고마운 마음과 비즈니스는 별개입니다. 감사의 표시는 식사 대접이나 선물로 충분하지만, 회사의 자산이 되는 결과물에 대한 권리는 반드시 명확한 문서로 정리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조금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불편함이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거대한 법적 분쟁과 인간관계의 파탄을 막아주는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 좋은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지금 바로 계약서를 쓰십시오. 그것이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법입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중요한 결정 전에는 자격 있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게시물에는 광고·제휴 링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