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경업금지의무 동종업계 창업 시 문제 될까?

오랜 시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회사를 키워온 핵심 임원 A씨. 그는 회사의 영업 비밀과 고객 리스트, 미래 사업 계획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야말로 회사의 ‘심장’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A씨가 사표를 냅니다. 개인적인 사유라며 말을 아끼지만, 어딘가 찜찜한 기운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 뒤 A씨가 동종 업계에 회사를 차렸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심지어 우리와 거래하던 핵심 고객사들이 하나둘씩 A씨의 회사로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매출은 곤두박질치고, 회사는 순식간에 존폐의 위기에 내몰립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배신감과 함께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이거,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건가?”

많은 대표님들이 ‘인간적인 신뢰’라는 이름 아래 간과하는 문제, 바로 이사의 경업금지의무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의적 책임이 아니라, 회사의 생존과 직결된 날카로운 법률적 칼날입니다. 지금부터 이 보이지 않는 칼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 회사를 지키는 방패로 활용할 수 있는지 샅샅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경업금지의무, 그 보이지 않는 족쇄의 정체

많은 분들이 이사의 경업금지의무를 퇴사 후 경쟁 업체에 취업하거나 동종 업체를 창업하지 못하게 막는 ‘전직금지약정’과 혼동합니다. 하지만 둘은 뿌리부터 다릅니다. 이사의 경업금지의무는 별도의 계약서가 없어도 상법에 따라 이사라는 직책을 맡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발생하는, 아주 강력하고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상법 제397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이 없으면 자기 또는 제삼자의 계산으로 회사의 영업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동종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회사의 무한책임사원이나 이사가 되지 못한다.” 말이 조금 어렵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이사는 회사의 허락 없이는 회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그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 법은 이런 의무를 이사에게 지우는 걸까요?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사는 회사의 영업 비밀, 내부 정보, 핵심 기술, 고객 데이터 등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만약 이사가 이런 고급 정보를 이용해 개인적인 사업을 하거나 경쟁사를 돕는다면, 회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한 팀의 감독이 상대 팀의 전략을 짜주는 것과 같습니다. 법은 이런 불공정한 게임을 원천적으로 막아 회사의 정당한 이익, 즉 주주들의 재산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의무는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등기이사’뿐만 아니라, 회장, 부사장 등의 직함으로 실질적인 업무 집행권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이사’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함이 아니라 ‘실권’입니다.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이 부르는 손해배상 폭탄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혹은 “이 정도는 경쟁이라고 할 수도 없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했다가는 상상 이상의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의무를 위반한 이사를 상대로 막강한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 그 파급력은 회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큼 강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회사의 개입권(Intervention Right)입니다. 이는 회사가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한 이사가 올린 이익을 통째로 빼앗아 올 수 있는 권리입니다. 예를 들어, A이사가 회사 몰래 경쟁 사업을 통해 1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회사는 이 거래가 원래 우리 회사가 했어야 할 거래라고 주장하며, 그 10억 원의 매출(또는 이익)을 회사에 귀속시키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사가 개인적으로 벌어들인 돈이 순식간에 회사의 자산으로 둔갑하는, 그야말로 ‘이익 박탈권’인 셈입니다.

개입권만으로 회사의 손해를 전부 회복할 수 없다면, 다음 단계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입니다. 회사는 이사의 경쟁 행위로 인해 발생한 모든 유무형의 손해를 입증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핵심 고객을 빼앗겨 발생한 수년간의 예상 매출 감소분, 회사의 이미지 실추로 인한 영업적 손실, 핵심 인력 유출로 인한 손해까지도 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소송 규모가 수십, 수백억 원에 이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만약 해당 이사가 아직 재직 중이라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해 즉시 해임시킬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됩니다. 더 나아가, 이사의 경업 행위가 회사에 심각한 재산상 손해를 끼쳤고 그 과정에서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에 따른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민사 분쟁을 넘어 전과 기록이 남는 범죄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선을 넘었다면? 법적 분쟁의 현명한 해결법

이미 이사의 경업 행위가 발생했고, 회사에 실질적인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감정적인 대응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양측 모두 냉정하게 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회사의 입장: 권리를 되찾기 위한 3단계 전략]

  1. 증거 확보가 최우선이다: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있습니다. 해당 이사가 재직 중 주고받았던 이메일, 업무용 메신저 대화, 내부 자료 접근 기록, 경쟁사 설립 관련 정황 증거, 고객과의 접촉 내용 등을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증거보전신청 등 법적 절차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2. 내용증명으로 공식 경고하라: 소송에 앞서 법무법인의 이름으로 ‘경업금지의무 위반 행위 중단 및 손해배상 청구 예고 통지’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문제 해결 의지를 명확히 하고 향후 소송에서 유리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3. 가처분과 본안소송을 동시에 준비하라: 소송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 사이 경쟁 행위로 인한 피해가 계속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업금지 가처분’을 신청해야 합니다.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 본안 소송 판결이 나기 전까지 해당 이사의 경쟁 사업을 즉시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동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본안 소송을 제기하여 금전적 피해 회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사의 입장: 방어를 위한 3가지 논리]

  1. 이사회의 승인을 입증하라: 경업금지의무의 가장 강력한 면책 사유는 ‘이사회의 승인’입니다. 공식적인 이사회 의사록이 없더라도, 대표이사를 포함한 다른 이사들이 해당 사실을 알고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관련 이메일, 회의록, 대화 녹취 등이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2. ‘경업’의 범위가 아님을 주장하라: 회사의 사업과 자신의 사업이 ‘동종 영업’에 해당하지 않음을 법리적으로 다퉈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 회사가 B2B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곳인데, 새로 시작한 사업이 B2C 컨설팅이라면 영업 대상, 방식, 목적이 다르므로 경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3. 손해액을 최소화하고 합의를 시도하라: 법적 분쟁이 길어지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회사가 주장하는 손해액이 과장되었다는 점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반박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분쟁의 씨앗을 원천 차단하는 예방 시스템 구축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사후 대응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애초에 이런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중요하지만, 법적 안전장치는 그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핵심은 바로 ‘퇴사 후 경업금지 약정(Non-Compete Agreement)’을 명확히 체결하는 것입니다. 상법상 경업금지의무는 원칙적으로 ‘재임 중’에만 적용됩니다. 따라서 이사가 퇴사한 이후의 행위까지 규제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계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약정은 근로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에, 법원은 그 유효성을 매우 까다롭게 판단합니다. 유효한 약정이 되려면 다음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 합리적인 기간과 지역: 통상적으로 금지 기간은 1~2년, 지역은 회사의 실제 영업권이 미치는 범위 내로 한정해야 합니다. 5년, 10년과 같은 과도한 기간이나 ‘대한민국 전역’과 같은 포괄적인 지역 제한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 회사가 약정을 통해 보호하려는 것이 단순한 영업 노하우가 아닌,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고유의 기술이나 영업 비밀이어야 합니다.
  • 상당한 대가의 제공: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가로 회사가 해당 임원에게 특별한 보상(예: 별도의 약정 수당, 스톡옵션, 높은 연봉 등)을 제공했는지가 약정의 유효성을 가르는 핵심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의무만 부과하는 약정은 무효로 판단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미래에는 법원이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경업금지 약정의 유효성을 더욱 엄격하게 심사할 것입니다. 따라서 ‘대가를 지불한 만큼 권리를 요구한다’는 원칙에 따라, 합리적이고 공정한 약정을 설계하는 기업만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사의 겸직이나 외부 활동에 대한 승인 여부를 반드시 이사회 의사록에 명확히 기록으로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문화가 훗날 가장 날카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던 핵심 인재가 회사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경쟁자가 되는 비극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설마 우리 사람이 그럴까’ 하는 막연한 믿음 대신, 오늘 당장 회사의 정관과 임원 계약서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잘 만든 계약서 한 장과 투명한 의사결정 기록이, 수십억 원의 소송을 막고 회사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패가 될 것입니다.

법적 고지 · 면책조항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중요한 결정 전에는 자격 있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게시물에는 광고·제휴 링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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