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세 계약서에 서명하려던 당신, 빼곡한 글자들 사이에서 위약금이라는 단어를 발견합니다. 옆자리 공인중개사는 계약을 어기면 내는 돈이라고 간단히 설명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어, 이건 그냥 손해배상이랑 같은 말 아닌가? 뉴스에서 기업 간의 소송을 다룰 때도 두 단어가 섞여 나오는 것 같은데.
계약을 파기했을 때 내가 물어줘야 하는 돈의 성격,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위약금과 손해배상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뿌리와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아는 것은 내 재산을 지키는 든든한 법률 무기가 됩니다.
위약금, 약속의 무게를 미리 정하다
위약금의 핵심은 미리 약속한 돈이라는 점입니다. 계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만약 누군가 약속을 어길 경우를 대비해, 그 책임의 크기를 숫자로 정해두는 장치입니다. 복잡한 계산 없이, 약속 위반이라는 사실만으로 지급 의무가 발생하죠.
쉽게 말해 결혼식장 예약금을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 예식장 예약을 취소하면, 예약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고 미리 안내받습니다. 예식장 측이 나의 취소 때문에 다른 예약을 받지 못해 얼마의 손해를 봤는지 일일이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취소라는 약속 위반 행위만으로 미리 정해둔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죠.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기업과 1,000만 원짜리 프로젝트 계약을 맺으며, 기업의 일방적 계약 파기 시 프로젝트 금액의 30%를 위약금으로 지급한다는 조항을 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조항 덕분에 디자이너는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 그동안 투입한 시간과 노력, 다른 일을 포기한 기회비용 등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않고도 약속된 3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 실제로 발생한 손실을 채우다
반면 손해배상은 실제 입증된 손해를 물어주는 개념입니다. 계약 위반으로 인해 상대방이 입은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산출하고 그만큼을 돈으로 메워주는 것입니다.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로 인해 얼마의 손해가 발생했는지를 명확히 증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 업체가 공사를 약속한 날짜보다 한 달 늦게 끝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로 인해 집주인은 한 달간 비싼 비용을 내고 다른 곳에서 머물러야 했고, 새로 산 가구를 보관하기 위해 창고도 빌려야 했습니다. 이 경우 집주인은 추가 숙박비 영수증, 창고 대여료 영수증 등을 근거로 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즉, 업체의 잘못으로 인해 실제로 발생한 손해액을 정확히 계산하여 요구하는 것이죠.
만약 계약서에 지연에 대한 위약금 조항이 없었다면, 집주인은 이렇게 실제 발생한 손해를 직접 증명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래서 둘의 진짜 관계는?
법률적으로 위약금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합니다. 말이 조금 어렵지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계약서에 위약금 조항을 넣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금액을 손해배상금으로 보기로 미리 합의했다는 뜻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부동산 계약금입니다. 아파트 매매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건넸다면, 이 계약금은 위약금의 성격을 갖습니다. 만약 구매자가 변심하여 계약을 파기하면 이 계약금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약금입니다. 판매자는 구매자의 파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팔 기회를 놓쳐 얼마의 손해를 봤는지 증명할 필요 없이, 계약금으로 손해배상을 갈음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판매자가 파기하면 계약금의 두 배를 물어주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물론, 약속된 위약금이 사회 통념에 비해 너무 과도하게 많다고 판단될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그 금액을 줄여주기도 합니다. 법이 최소한의 균형을 잡아주는 셈입니다.
계약서의 그 단어, 이렇게 이해하세요
이제 계약서에서 위약금과 손해배상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명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위약금 조항이 있다면, 이는 분쟁 발생 시 복잡한 손해 증명 과정을 생략하고 약속된 금액으로 배상 책임을 마무리하자는 간편하고 강력한 합의입니다. 따라서 계약 시 위약금 액수가 합리적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반대로 위약금 조항이 없다면,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 내가 입은 손해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증명해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위약금은 미래에 발생할지 모를 손해배상의 복잡함을 미리 해결해두는 현명한 약속이며, 손해배상은 약속이 깨진 후에 실제 손실을 복구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이 명확한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계약 관계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당신의 소중한 권리를 더욱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중요한 결정 전에는 자격 있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게시물에는 광고·제휴 링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