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등기부등본을 떼어 본 적 있으신가요? 대표이사 이름 옆에 나란히 적힌 ‘사내이사’, ‘사외이사’, ‘기타비상무이사’라는 직함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다 같은 이사 아니야? 그냥 자리만 채워주면 되는 거 아닌가?” 특히 이제 막 회사를 세운 대표라면, 이 칸을 누구로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친한 친구나 가족 이름을 일단 올려두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이 무심코 올린 이름 하나가 미래에 당신 회사의 발목을 잡는 거대한 족쇄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투자 유치는 번번이 실패하고, 예기치 못한 법적 분쟁에 휘말리며, 심지어는 대표이사인 당신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회사가 문을 닫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이사의 종류를 제대로 이해하고 각 역할에 맞는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튼튼한 배를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회사를 순항하게 할, 혹은 침몰시킬 수도 있는 ‘이사’의 세계를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선장, 항해사, 그리고 선주 대리인: 이사의 세 가지 얼굴
회사의 이사진을 하나의 배를 움직이는 팀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 배에는 매일같이 키를 잡고 노를 젓는 선원도 있고, 가끔 항구에 들어올 때 길을 안내하는 도선사도 있으며, 배 주인을 대신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대리인도 필요합니다. 사내이사, 사외이사, 기타비상무이사는 바로 이 세 가지 역할을 나눠 맡는 핵심 인력입니다.
사내이사(常務, Standing Director)는 말 그대로 회사에 상시 출근하며 월급을 받는 ‘내부자’ 이사입니다. 대표이사, 전무, 상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직함을 가진 임원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배의 ‘선장’과 ‘선원’처럼 회사의 일상적인 업무를 직접 집행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실제 매출을 만들어내는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사외이사(社外, Outside Director)는 회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전문가’입니다. 회사의 주요 주주도 아니고, 직원도 아닙니다. 이들은 마치 위험한 암초가 많은 항구에 배가 들어올 때 잠시 승선하여 안전한 길을 안내하는 ‘도선사(Harbor Pilot)’와 같습니다. 회계, 법률, 기술 등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경영진의 독단적인 결정을 견제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언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독립성’입니다.
기타비상무이사(非常務, Non-executive Director)는 회사에 상근하지는 않지만, 사외이사와는 달리 회사와 특수한 관계가 있는 ‘외부자’ 이사입니다. 가장 흔한 예가 회사에 거액을 투자한 투자사의 임원입니다. 이들은 배의 주인인 ‘선주(船主)의 대리인’과 같습니다. 매일 배를 운항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투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감독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예: 대규모 투자, M&A)에 참여하여 투자자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2. ‘이름뿐인 이사’가 불러오는 법률 및 세무 리스크
많은 중소기업 대표들이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 사외이사가 왜 필요해?”라고 반문하며, 이사 자리를 그저 명목상의 직책으로 채우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시한폭탄의 스위치를 눌러놓고 매일 출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사진 구성의 불균형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합니다.
가장 먼저, 법적 책임의 연대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상법상 이사는 회사의 경영 판단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선관주의 의무)를 집니다. 만약 회사가 잘못된 결정으로 손해를 입으면, 이사회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진 이사들은 직책에 상관없이 모두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표이사가 무리한 사업 투자를 강행하여 회사에 수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이사회에서 별다른 검토 없이 거수기처럼 찬성만 한 사외이사나 기타비상무이사 역시 대표이사와 똑같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 내용을 잘 몰랐다”는 항변은 법정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둘째, 대외 신용도 추락으로 자금 조달 길이 막힙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심사하거나 벤처캐피탈(VC)이 투자를 검토할 때, 재무제표만큼이나 중요하게 보는 것이 바로 ‘이사진 구성’입니다. 만약 이사진이 대표이사와 그의 가족, 친구로만 채워져 있다면 어떨까요? 외부 투자자 입장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회사’, ‘대표이사 1인의 독단으로 언제든 리스크가 터질 수 있는 회사’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해당 분야와 전혀 관련 없는 인물들로 이사진을 채웠다면, 기술력과 사업성에 대한 신뢰마저 잃게 됩니다. 이사진 구성은 회사의 거버넌스, 즉 경영 투명성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무조사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 근무하지 않는 기타비상무이사에게 매월 거액의 보수를 지급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세당국은 이를 정상적인 인건비가 아닌, 사실상의 접대비나 대표이사의 자금 유용 통로로 보고 해당 비용을 부인(인정하지 않음)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회사는 법인세를 추가로 납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산세까지 물게 되는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이사 구성이 회사의 현금 흐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입니다.
3. 우리 회사에 맞는 최적의 이사진 구성법
이미 문제가 발생했다면 해결이 복잡해지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 회사의 상황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목적에 맞는 이사진을 구성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회사의 성장 단계와 업종 특성에 따라 최적의 이사진 조합은 달라집니다.
초기 창업 기업(Seed ~ Series A 단계)이라면, 사내이사 중심의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가 효율적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대표이사를 포함한 핵심 창업 멤버(COO, CTO 등)를 사내이사로 등재하여 사업 실행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때부터라도 법률 전문가나 회계사를 기타비상무이사 또는 고문으로 위촉하여 최소한의 법률, 재무 리스크를 관리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자동차에 운전자와 동승자만 타더라도, 최소한의 보험에는 가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장기 기업(Series B 이상, 외부 투자 유치 기업)이라면, 본격적으로 이사진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때부터는 투자자를 대변할 ‘기타비상무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투자사의 목소리만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회사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I 챗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다면, 해외 M&A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나 글로벌 IT 기업 출신 임원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입니다. 이들은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객관적 조언자이자, 외부 세계와 회사를 연결하는 든든한 가교가 되어줄 것입니다.
안정기 중소기업(매출 100억 원 이상)은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이사가 모든 것을 직접 챙기기 어렵고, 내부 비리나 부실의 위험도 커집니다. 이때 필요한 인물이 바로 재무 또는 회계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입니다. 그는 회사의 감사 역할을 수행하며 재무 건전성을 감독하고, 경영진의 독단적인 자금 집행을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상장사가 아니더라도 선제적으로 투명한 거버넌스 구조를 갖추는 것은, 미래의 상장이나 M&A를 위한 최고의 투자입니다.
이사 선임 시에는 반드시 각 이사의 역할과 책임(R&R), 보수, 임기 등을 명시한 ‘이사 위촉 계약서’를 작성하여 법적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이사회, 비용이 아닌 최고의 전략 자산으로
문제를 예방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이사회를 ‘법적 의무’가 아닌 ‘회사의 성장을 위한 핵심 전략 기구’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입니다. 이사회는 단순히 안건을 통과시키는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놓고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이사회의 정기적인 운영이 필수적입니다. 분기별로 한 번씩이라도 정기 이사회를 개최하고, 회사의 주요 현안과 재무 상태, 미래 전략에 대해 투명하게 공유하고 논의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와 기타비상무이사는 회사의 내부 사정을 깊이 이해하게 되고, 더욱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서면 결의로만 대체하는 관행은 지금 당장 버려야 합니다.
둘째, 미래를 대비한 이사진 구성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회사가 3년 뒤, 5년 뒤에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고 그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물을 미리 물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수 중심의 제조업체가 3년 내 해외 수출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지금부터 해외 영업 및 마케팅 전문가를 사외이사 후보로 검토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 기업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2025년 현재, 이러한 흐름은 대기업과 상장사를 넘어 모든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독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이사진 구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규제 또한 이사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내이사, 사외이사, 기타비상무이사는 단순히 등기부등본의 한 줄을 채우는 이름이 아닙니다. 이들은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조타수이자, 암초를 피하게 해주는 등대이며, 때로는 폭풍우를 함께 헤쳐나갈 든든한 동료입니다.
지금 바로 당신의 회사 등기부를 열어보십시오. 그곳에 적힌 이름들은 당신 회사의 미래를 위한 최강의 팀입니까, 아니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당신 회사의 운명이 달려있을지도 모릅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중요한 결정 전에는 자격 있는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게시물에는 광고·제휴 링크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